풀벌레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.-이용악

추교서 2021. 11. 29. 10:02

우리 집도 아니고

일가 집도 아닌 집

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

어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

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

 

노령을 다니면서까지

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

한 마디 말겨 두는 말도 없었고

아무을 만의 파선도

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

목침을 반듯이 벤 채

 

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

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

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 갈 뿐

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리켰다

때 늦은 의원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

이웃 늙은이 손으로

눈빛 미명은 고요히

낯을 덮었다

 

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

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

어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 최후의 밤은

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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