개에 관한 명상 / 이응준

추교서 2021. 12. 20. 12:01

늑대의 손자. 아버지를 닮지 못해
들에서 정원으로 추방당한
들개의 아우. 가족을 이해하지 못해
날 것으로부터 밥 찌꺼기로
식성이 변한
용도가 아주 다양하고
주인을 속일 줄 모르며
원망은 더 더욱 알지 못하는
저 동물답지 못하게 호화스러운 잡종의 개들
저 어벙하게 팔려만 가는 순종의 개들


하지만 나는 여러 번 보아 왔지 않았는가.
가끔가다 제 새끼들이
이 집 저 집 흩어지게 되면
맥없는 목소리로 키 큰 양옥집 사이에서,
우리 이웃의 대문 앞에서,
늑대의 자손임을
들개의 아우였음을 애원하는
아주 미묘한 후회들을


하지만 나는 이것 또한 잘 알고 있지 않은가.
죄라는 것은 더러워질 때부터
더러웠다는 것.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
본래의 제 모습을 모르는
것임을. 잘 가라


늑대의 손자 들개의 아우
영원하라. 늘 곁에 있어 주어 고맙고도
한심한 개의 자손 개의 아우들이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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